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드레아 피를로 (문단 편집) == 플레이 스타일 == [youtube(eUg9Sx28MlA)] [[파일:i14074968339.gif]] 21세기를 대표하는 후방 플레이메이커의 화신같은 존재이다. 따라서 피를로의 플레이를 설명하고자 함은 곧, 후방 플레이메이커의 정의를 서술하는 것과 본질이 다름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므로, 피를로의 플레이를 이해하고자 후방 플레이메이커에 대한 간단한 서술이 덧붙여져야 할 것이다. 그만큼 피를로는 이 분야에서 대명사와 같은 선수라고 할 수 있다. 본디 후방 플레이메이커라는 직책은 역사적으로 봐도 보편적으로 그리 자주 채용되는 역할이 아니다. 늘 언제나 한 시대에 뛰어난 선수가 몇 명 없는 분야이기도 하다. 그 궁극적인 이유는 대부분의 감독들이 자신의 팀에 아무나 함부로 후방 플레이메이커로서 기용하질 않기 때문이다. 후방 플레이메이커라는 직책 자체를 채용을 안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 이유는, 축구에서 플레이메이커란 그 팀의 경기에서 동료들에게 볼을 주로 위임받는 자를 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신이 '볼을 지배하는 자' 라는 것을 자타에 인정 받는 무언의 경배이자 엄청난 신뢰임과 동시에 스포트라이트와 다름이 없다. 이것은 동료들이 모두 한 선수에게 경기 운영권을 몰아주고 그 선수의 발 끝에 자신들의 운명을 맡기는 것과 다름이 없다. 단 한 명의 기량이 11명이서 화합하는 것보다 더 위력이 크다고 판단할 때 플레이메이커를 기용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플레이메이커를 기용했을 때 나타나는 고질적인 문제점이다. 플레이메이커를 기용하게 되면, 상대방에게 자신의 패를 보여주면서 카드 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알고도 못 이기게 하는 패를 갖추지 못 했다면, 패를 보여주는 것은 패배의 지름길이다. 단적으로 말해, [[박지성|플레이메이커에게 수비력이 뛰어난 수비 전문 선수를 1:1로 맨투맨 마킹을 시켜서 전원 공급 자체를 아예 차단해버리면 경기를 수월하게 풀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전성기 밀란 시절에는 단순히 피를로를 마크하는 것만으로는 게임을 수월하게 풀어나갈 수는 없었다. 피를로를 막자고 맨마킹을 하면 팀의 공격의 일정 부분을 포기해야 하는데다, 팀 단위로 강하게 압박을 구사하자니 [[카카]]나 [[셰브첸코]] 같은 선수들이 뒷공간을 유린하고, 그 선수들을 막자고 라인을 내리자면 피를로가 날뛸 환경을 제공해줄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2007년 [[세비야]]와의 [[UEFA 슈퍼컵]]에서 세비야의 [[크리스티안 폴센]]이 피를로를 전반 내내 잘 마크했으나 카카를 막기 위해 내려갈 수 밖에 없었고, 후반에 피를로가 한결 쉽게 경기를 운영하며 밀란이 3대1로 승리했다.] 보통, 플레이메이커를 기용할 땐 자연히 최대한 높은 위치에서 볼을 위임 받는 역할, 즉 공격형 미드필더들이 그러한 임무를 수행하는 빈도가 높은 것이다. 모두가 플레이메이커에게 달려들기 때문에 그만큼 경기 중에서 압박을 가장 많이 받는 존재이며, 따라서 그만큼 볼을 빼앗기거나 턴오버를 일으키는 빈도가 가장 높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볼을 잃었을 때 리스크를 줄이고자 최대한 상대 진영에서 플레이를 해야하는 것이 암묵적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허나 후방 플레이메이커라는 직책은 그러한 리스크를 품고 있음에도 한술 더 떠서 후방, 즉 자신의 골대에 가까운 진영에서 경기하는 플레이메이커들을 말한다. 이러한 선수들은 역사적으로 매우 드물었으며, 이러한 직책의 선수들을 기용하는 감독과 팀들 역시 매우 희소하고 독창적인 케이스들이 많았다. 대체적으로 전술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이며 기술적인 축구를 원하는 팀들에게서 이러한 선수들을 볼 수 있었다. 또한 그마저도 장기간에 걸쳐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선수는 훨씬 드물었다. 기본적으로 후방에 플레이메이커를 기용한다는 발상은 매혹적인 동시에 위험한 가시 돋친 장미와 같은 것이다. 볼을 위임받는 자가 자신의 진영에 머물러 있을 때 초래할 리스크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얻을 수 있는 이점은, 후방에서부터 기술과 창조성을 바탕으로 전방 선수들의 조금 더 공격적인 오프 더 볼 움직임을 유발하고, 유의미한 공격 전개를 조금 더 자주 연출할 수 있다는 이론이었다. 이것은 중요했고, 굉장히 전술적으로 진보적인 발상이었다. 현대와 같은 골키퍼로부터 시작되는 유기적인 빌드업 전술이 고안되거나 상용화 되지 않던 시절엔, 축구 경기의 속도가 전반적으로 훨씬 타이트하고 빨랐다. 후방에서 시작되는 볼의 대부분은 그저 어중이떠중이 패스 능력을 가진 골키퍼나 센터백들의 롱 패스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후방 빌드업 작업의 개념이 거의 없이 잦은 패스 미스에 의한 볼 소유권 상실, 창조적인 기회 창출보단 육탄전에 의한 속공이 축구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후방 플레이메이커의 기용은 그러한 육탄전에서 벗어나, 좀 더 세련되고 지배적이며 기술적인 축구를 가능케 했던 것이다. 허나 동시에, 후방 플레이메이커들이 팀 내 위험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역효과를 언제나 내포하고 있기에 대다수의 감독들이 그 직책의 매력을 알면서도 함부로 채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후방 플레이메이커로서 최초로 스타덤에 오르다시피 했던 선수는 바로 그 유명한 [[펩 과르디올라]] 일 것이다. 전술적으로 매우 진보적인 선구자들과 함께 했던 과르디올라는 분명히 그 수혜를 입어서 장기간 바르셀로나의 핵심으로 군림했다. 그는 90년대를 상징하는 후방 플레이메이커였다. 그 이후로 2000년대가 도래하자, 인터 밀란에서 고전하던 레지스타가 AC밀란에서 자리를 잡고 시대에 한 획을 그었다. 그가 바로 피를로다. 피를로는 과르디올라보다 더 진보한 스타일의 세련된 선수였다. 결정적인 차이는 후방에서의 경기 조립 뿐 아니라, 공격적인 오프 더 볼을 가져가는 선수에게 곧바로 직선적인 다이렉트 패스가 가능했다는 점이다. 후방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상대 골문 근처에서 뛰는 공격형 미드필더의 스루 패스보다도 훨씬 날카롭고 정확하게 패스를 넣어주는 능력이 있었다. 요컨대 후방에서 곧장 찬스메이킹이 가능할 정도의 패스 능력과 시야를 가진 것이었다. 대부분의 상대방은 피를로가 두렵기 때문에 수비 라인을 최대한 낮추고 압박의 강도를 낮췄다. 위험을 초래할 공간을 없애기 위해서 였다. 그렇게 하면서 자연히 피를로와 팀은 수월하게 지배적인 운영을 할 수 있었다. 극소수의 팀들은 피를로를 두려워 하지 않고 라인을 높이며 압박을 가했으나, 영리한 피를로와 [[카카|동료들이]] [[필리포 인자기|그 공간을 놓치지 않고]] [[안드리 세브첸코|언제든 폭격을 가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파일:external/lh3.googleusercontent.com/kakak4.gif]] 훗날 피를로가 자연히 노쇠함에 따라서 사실상 일대 처음으로 유린을 당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이 그를 상대로 무려 맨투맨 마킹을 하면서 10:10 싸움을 유발시킨 것이다. 선수 한명에게 전적으로 경기를 위임했던 밀란과 그러한 선수를 지워 버리고자 기꺼이 한 명을 풀타임 외근직으로 내어 준 맨유는 결국 10:10 싸움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밀란을 압도했다. 똑같은 10명이어도 한 명의 조종사에게 맞춰서 움직임을 지배당하는 팀과 10명이 서로 화합하며 유기적으로 뛸 수 있는 팀의 차이는 분명히 컸다. 현대 축구에서 나타난 후방 플레이메이커 기용의 실패 사례가 메이저 무대에서 처음으로 눈에 띄게 나타났던 상징적인 경기로 남아 있다. 이후 그 날의 주인공들이었던 양측의 선수들과 관계자들은 오늘 날까지도 얘기거리로 입에 오르고 있다. [* 다만 단순히 후방 플레이메이커 기용의 실패로 밀란이 대패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애초에 팀 전력부터가 당시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맨유가 노쇠화가 심각하던 밀란에 비해 우위에 있었다.][* 당시 노인장이던 AC밀란의 전력이 맨유보다 전반적으로 약했던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밀란은 더욱 피를로에 의존했다. 이걸 여실히 보여주는게 09/10 챔스 조별리그에서 밀란이 [[레알 마드리드]]를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3:2로 격파한 경기다. 이 날 피를로는 본인이 직접 한 골을 넣은것을 포함하여 [[마시모 암브로시니]]와 [[클라렌스 세이도르프]]에게 끊임없이 패스를 공급했고 결국 [[알레샨드리 파투]]가 두 골을 뽑으며 레알 마드리드를 어웨이에서 격파하는 쾌거를 썼다. 이 경기에서 피를로는 인생경기 탑10 안에 꼽힐만큼 큰 활약을 했다. 이렇게 올라간 16강 맨유와의 1차전에서도 비록 3:2로 역전패하기는 했지만 괜찮은 경기를 했다. 그런데 2차전에서 [[퍼거슨]]이 [[박지성]]에게 피를로를 전담마크하라는 특명을 내렸고, 경기장에서 존재 자체가 지워지면서, 공격의 혈관이 틀어막힌 밀란은 백패스와 횡패스만 남발하다가 무기력하게 4-0으로 박살나고 말았던 것이다.] 피를로는 후방 플레이메이커라는 태생적인 한계를 가진 역할을 매우 멋지고 낭만적인 이미지로 소화해 낸 센세이션 한 스타 플레이어였다. 분명 그 한계로 인해서 때론 좋은 경기 속에서도 받아야 할 온전한 찬사를 받지 못한 경기도 있고, 반대로 안 좋은 경기 속에선 집중 포화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등 굉장히 부담이 큰 역할을 하면서도 축구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공격수들보다도 훨씬 더 큰 존재감을 가졌던 보기 드문 선수였다. 연약한 후방 플레이메이커인 피를로를 기용하고도 결국 피를로의 전성기를 함께 했던 밀란과 이탈리아 대표팀은 리그와 챔피언스리그 그리고 월드컵 우승이라는 독보적인 성과로 보상을 받았다. 후방에서 창조성을 발휘하는 기술자 포지션에 대한 수요가 현대 축구에서 급격히 증가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다. 이러한 흐름은 곧 감독들의 후방 빌드업에 대한 고뇌를 야기했고, 후방 빌드업을 저지하고자 자연히 전방 압박에 대한 전술적 빌드 역시 놀라운 진보를 일궈냈다. 고전적이고 자유로운 풍의 인간중심적 축구를 펼치던 알렉스 퍼거슨 경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고도의 정밀화 된 기계같은 짜임새의 정밀한 현대적 축구를 고안해 낸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가 맞붙은 2009년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그 상징적인 신호탄이었다. 리스크를 감안하더라도 후방에서부터 시작하는 빌드업이 현대 축구에서 얼마나 경기에 중요한 영향력을 가지는 가를 보여준 시발점의 경기였다. 훗날 이후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전술적인 축구를 하던 밀란의 후방 빌드업을 봉쇄하고자, 그 때까지도 전적으로 밀란의 빌드업을 유임 받던 피를로를 잡기 위해서, 현대 축구에서 잘 쓰이지 않는 전술인 맨투맨 시스템을 들고 나오게 된다.[* 다른 종목으로 비유하자면, 농구의 전술중 하나인 박스 앤 원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농구의 박스 앤 원과 축구의 맨투맨 전술은 일반적인 프로 무대에서는 거의 보기 드문 희귀한 전술이다. 그만큼 퍼거슨으로선 피를로를 특별한 선수로 봤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현대 축구에 들어서 피를로가 홀로 해냈던 그 후방 빌드업 작업과 후방에서의 기회 창출은 현재까지도 여러 클럽들의 플레이 모토로 여겨질 만큼 선구적인 플레이였다고 할 수 있다. 현대 축구에 있어서 피를로는 후방 플레이메이커의 아이콘이자 대명사라고 할 수 있으며,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 [[펩 과르디올라]] 등의 고전적인 후방 플레이메이커와 차별되는 지점은 그가 후방에서 직접적인 기회를 창출해내는 비율이 높다는 점과 독보적인 세트피스 실력으로 엄청난 공격적 기여를 해낸 유니크 한 선수였다는 점이다. 후방, 즉 센터백이나 수비형 미드필더의 영역에서 패스를 잘 하고 조율하는 선수들은 늘 있어 왔지만 단순히 그들을 놓고서, 피를로라는 선수가 후방에서 뛰는 것과 같은 부류로 해석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피를로의 플레이 사례처럼 다소 진보적인 개념에 해당된다고는 볼 수가 없기에 차별점이 존재한다. 그만큼 피를로가 정의내린 후방 플레이메이커 역할이란 굉장히 유니크하고 여전히 보기 드문 것으로 남아 있다. 밀란의 동료 가투소는 '피를로가 공차는 걸 보고 있으면 내가 축구선수가 맞나 의심이 된다'라는 말로 그의 실력을 높이 평가했다. --뭐 가투소가 워낙 투박하긴 하지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